OVER THE CODE

ChatGPT와 개발자의 미래

April 27, 2023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그러하듯 나도 ChatGPT를 작년 12월부터 소소하게 잘 사용하고 있다. 낯설던 프로그래밍 언어가 점점 친숙하게 느껴지는 것 처럼 ChatGPT 또한 매일 매일 조금 더 친숙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고 Plus 구독 멤버십이 나오자 마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바로 결제했었다. 처음엔 단순히 검색의 대용품으로 사용했지만 이제는 특정 도메인 지식을 학습하기 위해 ChatGPT에게 문제를 내보라고 하기도 하고, 내가 가진 지식에 오류가 있는지 검증을 부탁하기도 한다.

요즘 특히 재미있게 하고 있는 활동은 ChatGPT와 함께 머릿속에만 그려왔던 시스템을 실제로 디자인해보는 것이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시스템에 대해 설명한 뒤, 기술 스택과 라이브러리들을 고민하며 클래스 단위로 설계를 해본다. 이런 과정에서 ChatGPT는 상당히 뛰어난 역할을 한다. 무엇보다 Best Practice를 찾는 데 시간을 크게 들이지 않아도, ChatGPT의 학습된 지식을 통해 답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가능한 옵션들을 나열하고 추가 프롬프트에서 정제하는 과정이 흔히 말하는 디자인 씽킹 플로우와 잘 어울린다. 발산과 수렴, 발산과 수렴의 연속인 것이다. 제약 사항 속에서 아이디어들을 Enumerate하고 Map, Filter, Reduce하는 과정을 거치며 단단한 논리를 작성해나가는건 모든 창조적인 활동에 대한 추상화된 워크플로우라는걸 ChatGPT 덕분에 깨닫게 되었다.

최근에 ChatGPT와 함께 디자인해보고 있는 시스템은 다음과 같다

  •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 / 파서 및 인터프리터 작성
  • 슬랙과 비슷한 멀티테넌시 SaaS 시스템 (Group, Workspace, Admin, Private channel 등 권한 처리를 중점으로)
  • Trading Bot
  • 분산 시스템용 컴포넌트

트레이딩 봇을 설계해보거라
트레이딩 봇을 설계해보거라

설계된 시스템을 실제로 구현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 구현까지 하기에는 회사일도 바쁠 뿐더러 미완성일지라도 설계만으로도 충분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한창 ChatGPT와 데이트를 하고 있던 중 ‘마틴 파울러가 알려주는 ChatGPT와 페어 프로그래밍 하는 법’ 이라는 글을 발견했고 그 글에서 내 작업방식이 구루들의 작업방식과 많이 닮아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Xu Hao님은 ChatGPT의 맥락에 자꾸 꼬리물기 식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서로 다른 세션에서 대화를 나누더라도 원하는 답변을 얻어낼 수 있는 전략이라고 소개했습니다. 물론 서로 다른 세션에서 새롭게 코드 작성을 부탁할 때, ChatGPT에 몇 가지 추가사항도 함께 알려줘야 통일성 있는 코드를 알려준다고는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좌우지간 꼬리물기식 대화전략이 코드 작성에 매우 유용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 Martin Fowler

결국 최종 결정은 사람이 내리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과정을 AI에게 맡기는 것이다. 이는 조그마한 개발팀의 형태를 연상케 한다. 머지않아 GPT-4의 제한이 해제되어 모두에게 공개되고, 그 이후에는 GPT-5가 등장하고, 결국에는 AGI가 나올 것이 분명하다. AutoGPT 프로젝트를 보면 GPT에게 인터넷과 파일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만으로도, 아직은 어리석지만 열심히 일하는 부하 직원을 한 명 늘릴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개발자라는 직업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해볼 만하다. 내 생각에는 아마 이렇게 될 것 같다.

AI 개발자 에이전트 시장이 생길 것이다. LinkedIn, Blind 같은 채용 시장에서 리크루터가 함께 일할 사람을 찾듯, 개발자는 인격과 스킬이 부여된 개발 AI를 찾고 고용할 것이다. AWS의 EC2 서비스처럼 시간당 과금되는 서비스 형태가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AI 에이전트를 구매하게 되면 해당 AI가 사용자에게 이메일을 보낼 것이다.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와 함께 짧은 소개가 이어지고, 곧이어 AI는 G-Suite 등록, GitHub Organization 초대, 각종 권한 부여, 슬랙 초대를 요구할 것이다. 마치 원격으로 근무하는 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자연스럽게 업무에 녹아들어 개발팀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해당 에이전트가 잘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언제든지 고용 계약을 해지하고 팀에서 내보낼 수 있으며, 잘 맞는다고 판단하면 에이전트를 몇 번의 클릭만으로 3개, 4개씩 복제해서 고용할 수 있다.

리더십 역할을 가진 AI도 등장할 것이다. 좀 더 추상화된 레이어에서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전략을 수립하고, 자신의 일을 수행할 AI를 더 고용하고 필요한 경우 회사의 재무에 관여할 수도 있다. 이 정도 단계까지 오면 어떤 사회가 될지 상상하기란 쉽지 않다. 중요한 것은 위에서 서술한 협업할 수 있는 수준의 AI 에이전트는 2년 이내에 현실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3대 500을 들지 못하면 AI는 당신의 도덕성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 입니다
3대 500을 들지 못하면 AI는 당신의 도덕성을 의심하기 시작할 것 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인공지능에 대한 새로운 뉴스와 우려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보면서, 내가 마주해야 할 미래를 무턱대고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란 쉽지 않다. 개발 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접촉 없이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는 많은 직종들이 동일한 과정으로 AI 에이전트 시장에 의해 지배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 가속도는 상당히 빠르기 때문에 앞으로 10년 후를 예측하기란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다만 이렇게 글로 정리해보고 늘 생각을 곁에 두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잡을 뿐이다.


© Karl Saehun Chung